청풍문화재단지, 호반

청풍호반은 충주 다목적댐 건설로 생성된 호수로 뱃길 130리중 볼거리가 가장 많고 풍경이 뛰어난 곳으로 내륙의 바다라고 합니다.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를 정점으로 해서 주위로 봉황이 호수위를 나르는 형상의 비봉산, 어머니 품속과 같이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금수산을 뒷 배경으로 한 청풍호반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0. 4. 15에 개장된 수경분수(162m)에서 쏘아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현재 1개타워에 3종의 시설을 설치하는 번지점프장(번지점프 50m, 자이언트스윙 36m, 번지라이트 36m)및 수상레져시설 등이 완공되면 주위의 국민연금청풍리조트 호텔및 E.S콘도미니엄의 종합휴양시설을 이용한 체류형 관광지로 각광받게 되어 그야말로 청풍호반은 보고, 즐기며, 체험하는 종합적인 국제적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것입니다.
청소년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지금은 8만 5천평의 규모로 확대 개발되어 제천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발돋음하고 있습니다.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점이 보관되어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 문화재는 직접 생활하거나 사용하던 것으로써 타 지역과 차별화되고 있으며 계속하여 놀거리, 볼거리, 먹거리장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금수산

금수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우아하며, 골이 깊고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어 사철 관광객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비단폭을 깐 듯한 녹음속에 맑은 물소리가 속삭이고,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 소리며, 봄철의 꽃, 여름철의 녹음, 가을철의 단풍, 겨울철의 설경 등 사시사철 어느 한 계절도 더할 것이 없는 절경입니다.
금수산에는 주봉인 망덕봉이 위용을 보이며, 이 산 남쪽 기슭 백운동에는 높이 30m의 폭포가 있는데 이폭포를 용담폭포라고 합니다. 금수산 심곡의 한양지유곡 양편에는 기암괴석과 청산이 있고, 청솔로 우거진 숲 사이 십리계곡에 차고 맑은 계류가 굽이치고 돌아 흐르면서 천하 절경의 9곡을 이루니 이 계곡이 능강구곡입니다.
계곡 양쪽에 그림 같은 병풍을 이룬 곳이 있는가 하면 꿈 속에 노닐던 도화원 같은 곳이 있고, 물이 고여 소를 이루고 폭포 쏟아지는 곳에는 흰구름이 내려 앉은 듯 계곡을 감추었다가 절경을 살며시 드러내는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

 

 

 

 

능강계곡,학현계곡

펜션에서 5분거리

청풍문화재단지에 이르기 전 청풍대교를 건너지 않고 좌회전하여 청풍호를 오른편에 끼고 산 중턱의 포장도로를 10여 분쯤 달리면 ES리조트를 만나고 이곳을 지나 정방사를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왼쪽으로 금수산에서 발원하는 능강계곡을 만나게 된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맑은 물이 굽이치고 깎아 세운 것 같은 절벽과 바닥까지 비치는 맑은 담, 쏟아지는 폭포수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이곳에 능강구곡을 지정해 아름다운 정취를 즐겼다.
현재 수산면 능강교부터 용주폭, 관주폭, 와운폭, 몽유담, 쌍벽담이 청풍호 방향으로 위치하며1~3곡은 충주댐 수몰지에 있어 갈수기에 드러난다.

학현계곡의 학현천은 금수산 신선봉[845m]에서 발원하여 상학현의 학현폭포에서 서류하고 학현마을 좌우 협곡의 세류를 합수한다. 이후 관창들에서 남류한 뒤 도화동천을 거쳐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에서 청풍호에 유입되는 하천으로, 연장 5.83㎞, 폭 38m, 유역 면적 12.61㎢이다.


 

 

 

 

 

월악산

월악산국립공원은 2개도 4개시군 9개읍면 34개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기암단애와 절경으로 우리나라 5대 산악에 속하는 명산이며 17번째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곳곳에 산재한 문화재와 송계팔경, 용하구곡등 명소와 절경에 감탄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월악산을 제2의 금강산 혹은 동양의 알프스라합니다.
월악영봉(1094m)은 암벽높이 150m 암벽둘레 4km로 국사봉이라고도 하며, 중봉, 하봉, 쪽도리봉등 기암단애가 치솟아 맹호처럼 우뚝선 산세와 웅장함으로 예로부터 명산이라 불리어 왔고, 산형지세가 천하의 요새를 이루어 많은 애환을 품고 있으며 송계계곡에는 명성왕후의 별궁이 한때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신라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보고 망국의 한을 달래고 있다는 미륵사지의 석불입상과 덕주사 마애불상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천년명산유곡입니다.

 

 

 

 

옥순봉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는 옥순봉은 해발 286m로서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5-1번지와 9번지 사이에 있는 명소이다. 수산면 상천리에서 등산하여 가은산(해발 476m)에서 바라보거나 청풍호의 유람선을 탑승하여 경관을 즐기는 것이 좋으며, 산형의 색과 묘, 그 산세의 기복과 굴곡이 실로 자유 분방하고 기상천외하여 그 절경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옥순봉 석벽에는 '단구동문'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퇴계 이황 선생이 각명하고 옥순봉이라 이름지었는데 석벽이 마치 우후 죽순처럼 솟아 오른 것 같다하여 명명되어 진 것이다.연산군때의 김일손은 이곳의 절경을 "여지승람"에 극찬하였고 청화자 이중환은 그가 쓴 "산수록"에서 옥순봉의 절경을 글로 지어 극찬하였다.

 

 

 

 

의림지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 하였습니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축조된 명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황 (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 서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고도 하며,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의를 3층으로 석축을 해서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려 수문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 박의림"현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합니다. 호반둘레 약 2km, 호수면 158,677m2, 저수량 6,611,891m3,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몽리면적은 289.4정보이며, 보수 당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한 흔적이 발견되어 삼한시대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는 유원지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는데 경승지로 호수 주변에 순조 7년(1807)에 새워진 '영호정'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 그리고 수백년을 자란 소나무와 수양버들, 30m의 자연폭포 등이 어우러져 풍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 및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 어로 각광받고 있는 명물이며,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 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우륵정"이 남아 있습니다.

 

 

 

 

베론성지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교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지로 1801년 신유박해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는데 그들은 옹기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속에 숨어 집필한 지역이며 1855-1866년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중의 한명인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분묘가 소재한 지역이다. 아울러 1866년 병인박해의 첫 순교자인 남종삼 묘소가 배론성지와 인접한 학산리에 있다.
근대에 이르러 1958년 원주교구에 속하여 원주교구장이 개발착수하여 진입로를 비롯한 성지일원을 말끔히 정리하고 단장하였다.

 

 

 

 

박달재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산을 박달재라한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 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만을 지었다.

 

 

 

 

용두산

충북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경계에 위치한 해발 871미터의 용두산은 삼한시대 축조된 의림지와 제2의림지, 솔밭공원을 남녘 자락에 펼치고 있는 제천의 진산이다. 산기슭에서 흘러내린 물이 용두천을 이루며, 의림지로 흘러든다. 북서쪽으로는 석기암산(906m)과 감악산(920m)이 이어진다. 제천 시내의 산이어서 교통이 편리하고 찾기가 수월하며 주말이면 제천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산행은 솔밭공원 앞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수령 수백년을 헤아리는 노송 백여 그루가 숲을 이룬 솔향기 가득한 공원에는 여러 점의 조각이 놓여 있어 운치가 있다. 의림지 북쪽으로 약 5백미터 지점에 자리한 이 솔밭공원을 지나면 진초록 못물이 더욱 맑은 제2의림지가 있다. 용두산 등산로는 그 위편으로 청소년수련원 오른쪽으로 나 있다. 의림지와 용두산산림욕장 등을 연계하여 산행하면 다양한 볼거리와 편안한 휴식을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있다.
솔밭공원 앞 주차장에서 400여 미터 올라가면 제2의림지의 모습이 좌측에 나타난다. 이내 진성가든 앞 삼거리에 닿는다. 이 곳에서 용담사로 들어가는 길은 북쪽으로 난 소로다. 이곳에도 10여대 주차 공간이 있다.
용두산은 제천의 진산답게 동서로 산줄기를 길게 뻗은 채 진작부터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곳곳의 능선에 세워져 있는 송전탑이 못내 눈살을 찌푸린다. 가든에서 30여 미터 올라서면 길 왼쪽에 ‘용담사 700미터'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오른쪽의 과수원을 지나면 용담사에 도착한다. 10여대 주차할 만 공간이 절 바로 아래에도 있다. 용담사로 원점 회귀 산행을 할 시에는 이 곳에 주차하는 것이 편리하다. 600여 년 된 옛 절터에 50여 년 전 태고종에서 중창한 용담사(龍潭寺)는 아담한 법당의 작은 절이다. 담 위로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 있다. 용담사 앞에는 맑디맑은 개울물이 흐른다. 이 곳 절이 해발 400여 미터 정도 되기 때문에 용두산 산행은 큰 부담이 없는 산이다.

 

 

 

 

탁사정

강원도 원주에서 제천을 들어오는 국도 5호선변에 자리하고 있는 제천근교의 유일한 유원지이며 여름 피서철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입니다.
조선 선조 19년(1568)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에 돌아올때 해송 여덟그루를 가져와 심고 이곳을 팔송이라 명명하였고, 그뒤 정자를 짓고 팔송정이라 하였습니다. 허물어진 팔송정을 후손 윤근이 다시 세웠고 원규상이 탁사정이라 하였으며, 팔송은 모두 죽고 지금은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으나 1999년도 10월에 팔송마을 및 제방둑에 20그루의 해송을 마을에서 심어 앞으로 해송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제천 10경의 "탁사정"은 정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자 주위의 절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한말 정운호(유인석 의병장과 함께 적의토벌 지휘에 맹활약)가 제천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곳 중 제8경 "대암"이 이곳입니다.

 

 

 

 

용하구곡.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신륵사 쪽으로는 월악산 정산을 오르는 길이있고, 억수리쪽으로는 두갈래 골짜기로 갈라져서 용하수 골짜기와 수문동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데 곳곳마다 16km의 계곡에는 원시림과 천하의 절경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용하구곡의 제1경인 수문동폭포의 장관부터 시작하여 병풍폭포, 수곡용담이 자연의 신비를 연출하고 8km물길의 비경인 관폭대, 청벽대, 선미대, 수룡담, 활래담, 강서대 등과 신륵사 위편의 수렴선대가 비경의 극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송계계곡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를 거쳐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까지 이어진 8㎞의 송계계곡은 수안보와 단양의 중간인 제천에 위치해 있으며 깊은 골짜기와 맑고 시원한 물, 월악산 등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사찰, 절터 등 유물이 산재한 여름 피서지의 보고입니다. 송계계곡은 8개의 계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월악영봉 
월악산의 최고봉(1094m)으로 기암괴석의 묘가 극치에 달했고 소박하면서도 장엄한 남성적이고 실로 걸작의 예술품이라 할 수 있으며, 영봉, 중봉, 하봉의 삼봉 거암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자연대 
송계계곡 첫 입구에 소재 한 곳으로 맑은 계곡물과 넓은 암반, 깊은 소가 있어 어디에 못지 않은 경승지 입니다.

월광폭포 
30여m의 3단폭포, 자연휴식년제로 입산이 금지되어 있고 신라시대에 창건했다는 월광사가 있었는데 임진왜란시 소멸되어 터만 남았고 이곳의 돌 거북과 비석은 경복궁으로 옮겨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수경대 
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제천하던 곳입니다.

학소대 
한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살았다는 곳으로 마애불로 오르는 산행길에 등산객이 쉬어가는 유일한 안식처 이기도 합니다.

망폭대 
덕주산성 남문과 한쪽맥이 이어져 있는곳으로 기암줄바위와 고무서리계곡을 굽이도는 맑은물과 어울린 절벽입니다.

와룡대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며 수심 5m의 깊은 웅덩이 가까이에 사자빈신사지석탑이 소재하고 있습니다.

팔랑소 
200여평의 화강암 반석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곳으로 옛날 하늘나라 공주가 하강하여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정방사

정방사는 금수산(1,016m) 산자락인 신선봉(845m)에서 청풍방면 도화리로 가지를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현재는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며 기도처로 유명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방사로 소개되어 있으며, 의상이 도를 얻은 후 절을 짓기 위하여 지팡이를 던지자 이곳에 날아가 꽂혀서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사전(寺傳)에 1825년 지금의 불당을 보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주변경관이 빼어나고 특히 법당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풍호는 세인의 삼라만상을 모두 잊게 할 정도로 전망이 좋다. 또한 법당 지붕의 3분의 1을 뒤덮은 암벽이 있는데, 그 웅장함과 기묘한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솟대문화공간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지난 2005년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화가 함께 상생하는 제천의 금수산자락 청풍호반에 전국최초로 우리의 전통적인 솟대를 현대적인 조형물로 재구성한 수 백 점의 솟대를 세워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꿈을 키워가는 희망의 동산으로 가꾸어 수많은 관람객이 솟대문화를 체험하였습니다. 2006년 세계와 문화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솟대”가 지닌 “메신저”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하이라이트 퍼포먼스를 통하여 한국 솟대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2007년 문화관광부의 전국 "명인/명품/명소"화 문화관광사업의 모범 사례로 선정되는 등 우리나라 솟대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능강솟대문화공간은 실내외 작품 전시장을 비롯 야생화단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산책로, 청풍호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굴피정자 및 휴식공간 등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조성하였으며 솟대조형연구실과 솟대만들기 체험관이 마련되어 학생, 가족, 직장단위 단체를 대상으로 솟대문화에 대한 역사와 가치관을 심어주는 새로운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적(향토지)박물관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제천에 위치한 지적박물관은 40여 년간 지적계통에 종사하였으며, 측량관서에서 행정을, 현장에서 측량을, 강단에서 강의를 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과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1999년 개관하였습니다.
이 박물관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한 지적(地籍)전문 자료관으로써 한국지적史를 알 수 있는 지적 유물(토지문서, 측량기계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향토지, 백년사, 기독교분야(성서, 개교회사) 등 다양한 서지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